내면일기 2017.06.25 01:22

나는 대화할 때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수만가지 모습에 대해 나는 털어놓지 않는다. 나의 일상을 말하지도 않는다. 오늘 있었던 일은 나만 안다. 누군가의 물음이 있고서야 마지못해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숨기고 있다. 드러내서 좋지 않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나의 일상은 너무도 단순하기 때문에 말할 가치가 없다는 이유가 크다. 만나는 사람도 없고, 해야만 하는 일도 없다. 단조롭고 조금은 무기력한 일상이 잔잔한 호수처럼 펼쳐져 있다. 누군가 내 일상에 돌을 던지지 않는 한 그것은 존재하지만 아무도 모를 그 무엇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회사 다닐 때조차 아무 말 안 했던 나를 발견한다. 굳이 알려서 기분좋을 내용이 아니면 입에 장막을 쳐버렸다. 고민을 털어놓는 일이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것 이상의 어떤 가치를 발견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말을 한다는 것도 똑같다. 말을 함으로써 얻는 것은 말을 했다는 것 이상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을 손익으로 계산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을 한다는 수고로움이 그저 수고로움일 뿐이라면 왜 말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생각을 말한다. 상대방이 말하는 바에 따른 내 생각, 그리고 경청, 그것만이 존재한다. 나는 일종의 관객이고 청중이다. 나는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 전하는 자신의 일상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이 의미가 있든 없든 상관 없다. 인간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한다. 기억에 남는 일을 말한다. 또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하며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고 인정받고자 한다. 그것에 나는 적절히 반응하고 호응하고 귀를 귀울여주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은 나를 궁금해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적절히 나의 깊고 어두운 곳에 있는 이야기를 하나 둘씩 꺼내어 들려주는 것이다. 들을려고 하는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즐겁다. 청중이야말로 이야기를 하게 하는 자극제인 셈이다. 하지만 청중이 사라진 요즘 나는 이야기를 하는 재미를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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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앞 테이블에 한 노파가 앉아 있다. 가게 주인이 밖에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온다. 노인이 말한다. "죄송합니다. 다리가 아파서 좀 앉았다 갈게요." 가게주인이 미소를 띄며 말한다. "괜찮습니다. 물 한 잔 드릴까요?" 노인은 그제야 불안한 눈빛을 거두며 말한다.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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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초입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가던 오토바이가 자전거를 부딪쳤다. 파란불이었다. 버스승객들은 짧게 탄식했다. 승객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아졌다. 모두 쓰러져 있었다.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아주머니도, 할아버지도, 그들이 지니고 있던 모든 물건들도 길바닥에 달라붙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침 인도를 걷던 학생이 멈춰섰다. 그는 아주머니를 일으켜세웠다. 사고당사자들은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은 듯했다. 할아버지가 언제 넘어졌냐는 듯 자기가 타던 자전거를 곧추세우더니 아주머니에게 역정을 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아주머니는 여전히 정신차리지 못했다. 이곳에서는 학생이 가장 분주했다.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길바닥에 흩뿌려진 물건들을 주워다녔다. 버스 승객들은 모두 숨죽인 채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버스 안의 관객들은 곧 탄식을 거두고 역정을 냈다. 그들은 마치 영화 한 편을 시청하듯 버스 밖의 연기자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있었다. 모든 비난은 아주머니에게로 쏠렸다. "저 여자, 신호 무시하고 지나가려다가 받아버린 거야." "쯧쯧..." 나를 포함한 모두는 관객이자 관중이었다. 누군가는 제정신이 아니라고까지 말했다. 그런들, 버스 밖의 연기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했다. 여전히 아주머니는 혼란 속에 있었고, 할아버지는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으며, 학생은 웃으며 물건과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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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광장에 한 광녀가 있다. 광녀는 산발한 머리를 사자처럼 풀어헤치고 누더기 옷을 입고 있다. 광녀는 오랜시간 그곳에 서 있었는지 얼굴이 흑콩처럼 새까맣게 그을려 있다. 광녀 앞으로 수많은 행인이 지나간다. 광녀는 행인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쉴새 없다. 광녀 주변으로 흡연구역에 내몰린 남자들과, 열차를 기다리며 서성이는 모녀, 구름떼처럼 버스환승센터로 퍼져 나가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광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그들은 광녀에게 관심이 없다. 수많은 인파 속에 묻혀 소리를 지르는 광녀의 모습을 무심히 지나치는 그들은 웬지 모를 일체감을 준다. 모두 무시하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제지하는 사람은 없다. 광녀는 혼자다. 이십여 분이 흐른다. 한참을 허공을 향해 울부짖던 광녀는 갑자기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리곤 입을 굳게 닫아버린다. 광장은 여느 때처럼 고요하다. 마치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원래 그러한 듯.


2017.06.2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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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내면일기 2017.06.23 01:54

나는 내가 천성적인 아웃사이더임을 알고 있다. 본질적으로 나는 다른 사람과 섞이지 못한다. 타인과 대화할 때면 나는 언제나 불안함을 노출하고 만다.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고, 그들의 언행에 내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수없이 떠들고 말한다. 그러나 때때로 말하지 않을 때가 있다. 고요할 때, 그때 나는 불안감이 증폭된다. 비로소 그때서야 내가 무슨 말이든 해야 할 때가 된 것인데, 말이 필요한 그 순간 나는 사고가 정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본질적으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가지는지, 그의 생활이 어떤지, 어떤 것에 취미가 있고 무얼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등에 관한 사항에 대해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러니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눈을 어디다 둬야 할까. 나는 가만히 있어도 될 상황이면 가만히 있고 싶다. 말하지 않고 괜찮을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조용히 가만히 침잠하기 바란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말'이라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말과 말 사이가 끊어졌을 때, 내가 상대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나는 연기를 해야만 한다. 그렇다. 연기한다. 그래서 과도한 행동이 뒤따르고 별로 시덥지 않은 말들을 꺼내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몸을 앞으로 내민 채 경청한다. 그것은 피곤한 일이다. 그렇게 해서 내가 얻는 게 무엇이 있을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가만히 있고 싶다. 하지만 나는 말해야 한다. 말을. 어쩔 수 없다. 나는 외로워서 밖으로 나왔으니까. 혼자 있는 데 익숙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이 혼자 있기 싫을 때가 오는 것이다. 하여튼 나는 어제도 연기를 했다. 연기라고 표현하는 게 좋겠다. 그렇지만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다. 약간 과장하였고, 쓸데없는 말을 더 했을 뿐이다. 마치 한 사람의 변사가 된 듯, 말을 늘어놓았다. 생각건대 그 순간 필요했던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돌이켜보건대 그것은 불필요했지만 효과는 좋았다. 상대가 기분좋아했으니까. 나는 진실한 모습으로 앉아 있지 못했지만 상대는 즐거워했다. 이방인은 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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